2008년 2월 16일 토요일

뉴욕시티를 나가다

도착한 지 일주일 만에 뉴욕시티를 처음으로 나가게 되었다. 약간의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기에 쉽게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나와 같이 ‘희망제작소’의 지원을 받고 뉴욕에 오신 분이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그분은 동생이 맨하탄에 살아 자주 뉴욕에 왔기에 지리를 잘 아는 분이었다. 나와 성은은 어찌어찌하여 그분과 연락이 닿았고, 우리는 만나기로 했다. 참으로 다행이었다. 처음 나간 뉴욕을 헤맬 일은 없게 되었으니 말이다.

뉴욕시티에 나가 맛있는 것을 먹을 생각으로 아침을 챙겨먹지 않았다.

Fort Lee -> Manhattan express bus $3.40

산골 소녀가 처음으로 시내 구경을 가는 기분이랄까. 허드슨 강을 건너며 맨하탄의 큰 건물들이 보이자 나는 어지러움을 느꼈다. 빙글빙글 돌고 돌아 맨하탄.

버스터미널에 내린 우리는 어디가 어딘지 우왕좌왕. 이쪽일까 저쪽일까 갈팡질팡.

어찌저찌하여 무사히 탈출 성공. 눈앞에 펼쳐진 휘황찬란한 뉴욕의 삐까번쩍한 뉴욕의 높디높다란 뉴욕의 큼직큼직한 뉴욕은 말 그대로 어마어마. 어마어마함 앞에 기가 죽었고, 기가 죽은 나는 조용히 길을 걸었다.

뉴욕에서 두리번거리면 안 돼

커다랗고 높다란 건물들 때문에 한치 앞밖에 보이지 않아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고, 모든 게 신기하고 요상할 따름이니 어찌 두리번거리지 아니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촌티내며 두리번거리다가는 봉변을 당할 수도 있다는 사람들의 경고를 생각하며 나는 최소한의 고갯질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개운하지 않은걸. 나는 에라 모르겠다 신나게 두리번거렸다. 좌우 위아래 쉴 세 없이 고개를 돌려가며 뉴욕을 담았다. 모든 것이 거대했고, 모든 것이 정신없었다. 도시 전체가 광고판. 돈에 의한 돈을 위한 소비를 위한 소비에 의한 생산에 의한 생산을 위한

돈 worry, don't worry NY.

삼성광고판이 타임스퀘어 앞을 빛내고 있었고, 그것을 바라본 나는 무의식 중에 한국이 자랑스러워요,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느껴요, 삼성 당신이 있어줘서 고마워요 를 생각하고 있었고, 나를 정신 나가게 해준 이곳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머리를 힘껏 털었다. 털털털.

나는 그곳을 서성거리며 그분을 기다렸고, 서성거리다 엄청난 줄을 발견했다. 그 줄은 바로 유명하디 유명한 브로드웨이의 공연 티켓을 사기 위한 줄이었다. 매표소 앞은 시장통이 따로 없었고, 사람들의 거친 액션은 먹이를 가운데 놓고 맹렬한 싸움을 벌이는 야수들 같았다. 어흥.

하지만 조만간 나도 그 무리 안에 섞여 맹렬한 싸움을 하게 되리라.

그분을 만났다. 바짝 긴장한 우리와는 달리 여유로운 뉴요커의 모습. 열정적인 그는 만나자마자 우리에게 뉴욕을 소개해주었고, 친절하게 구해 온 지도를 건네주었다.

카네기 식당

뉴욕에서 소문난 샌드위치 식당을 데려가 주었다. 네모반듯한 구조 안에 촘촘히 박혀 있는 사람들. 도시의 모습을 똑 닮은 식당 풍경이었다.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인테리어와, 전혀 친절하지 않은 웨이터. 수많은 메뉴에 머리는 어질 고르기는 난감.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주문을 했다.

엄청난 고기양을 자랑한다는 이 집의 자랑거리 샌드위치와, 미국식 햄버거 그리고 오물렛

그 정도의 오물렛이라면 나도 만들 수 있겠고, 그 정도의 햄버거라면 버거킹도 훌륭하겠다. 그나마 샌드위치는 괜찮은 맛과 푸짐한 고기의 양으로 승부수를 걸었으니 인정. 하지만 이렇게 먹고(심지어 나는 체하기까지 했다, 그리하여 하루종일 고생을 했더란다) 16불을 지불한다는 것은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가난한 휴학생.

I'm a poor girl.

맛있게 먹고 더부룩해진 배를 안고 걷기 시작했다. 네모반듯한 구조 덕분에 길 찾기는 의외로 쉬운 뉴욕시티. 우리는 열심히 걸었고, 나는 열심히 두리번거렸다. 다양한 인종이 한데 어울려 걷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고, 온통 유리로 수놓아져 매끈함을 자랑하는 현대식 고층 빌딩과 나름의 고풍스러움을 자랑하는 유럽풍의 고전식 건물이 한데 어울려 있는 풍경이 재미났다. 길거리에 즐비한 저렴한 스낵카와 건물들 속에 즐비한 비싼 레스토랑의 대비도 흥미로웠다.

갑 + 을 + 병 + 정 = 뉴욕

Farmer's market

유니온 스퀘어 광장 앞에 펼쳐진 시장. 유기농 주말 장이었다. 나는 이런 시장이 너무나도 좋다. 일행이 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돌아다녔다. 우리집에서 키운 소고기에요. 우리집 닭이 낳은 싱싱한 알이랍니다. 우리집 젖소 우유에요, 요구르트도 있답니다. 나는 치즈도 만들었어요. 내가 직접 만든 빵이랍니다. 우리집에서 키운 싱싱한 채소 들여가세요.

organic, organic, everything is organic.

딸기 요구르트, 쿠키, 스콘을 샀다. 일용할 양식 $6.5

바로 앞에서 뉴욕대학교를 발견했고, 찾으려 했던 것이 눈앞에 떡 하니 있으니 반가울 따름이었다. 특별한 캠퍼스는 없지만, 곳곳에 위치한 NYU는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공원도 스타벅스도 중고서점도 여유롭게 안고 있는 NYU가 내심 부러웠다. 아름답잖아!

한참을 걸어 차이나타운을 걸었고, 또 걸어 미국의 청담동이라 불리는 SOHO를 걸었다.

커다란 중고서점

천장이 높은 예쁜 서점. 중고서점 같지 않은 모양새를 갖추고 있었다. 많은 책들이 있었다. 실로 중고서적 뿐만 아니라 새 책들도 있었고 가격이 저렴했다. 이곳저곳, 이책 저책을 둘러 보았다. 관심을 끌었던 것은 classic literature. 나는 하드커버를 싫어한다. 하지만 한국의 많은 책들은 하드커버를 선호한다. 하드커버는 들고 다니기에 무겁고 읽기에 불편한데도 말이다. 아마도 보기 좋은 떡을 만들어 잘 파려는 속셈 같다. 분명 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일텐데도 말이다. 책은 장식품이 아니다. 그러므로 실용성이 강조되어야 한다.

읽기 편한 책을 만들어 주세요

미국 책들은 대부분이 소프트커버였고 종이 또한 표백을 하지 않은 paper back이었다. 나는 paper back의 거칠면서 가벼운 느낌을 좋아한다. 또한 손에 잡히기 쉬운 사이즈하며 그 느낌이 너무 좋지 않은가. 미국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책 기술 하나는 칭찬하고 싶다. 피로가 몰려왔다. 구석에 마련된 child corner에 가 엉덩이가 딱 맞는 의자에 앉았다. 곧 성은이 <the man who planted tree>를 들고 나타났다. 중고서점에 온다면 이 책을 꼭 찾아봐야지 하면서도 포기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훌륭하게 찾아 올 줄이야. 성은의 행동력은 역시 대단하다. $4.88

지하철을 탔다. 친절했던 그분과 헤어졌다. 말로만 듣던 뉴욕의 지하철. 쾌쾌한 냄새, 어두컴컴한 조명, 음산한 분위기. 분명 우리들의 수만큼 쥐들도 존재하겠지. 함께 타는 지하철.

선진국의 대표 나라답지 않은 일면이었다. 다음 역을 알리는 전광판도 아날로그식이니, 정겹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버스터미널 도착. 매번 나올 때마다 버스비를 계산하니 만만찮았다. 그리하여 우리는 3불 아끼는 것도 어디냐며 정기권을 끊었다.

10 ways $31.

어두워진 뉴욕의 분위기는 또 달랐다. 휘황찬란했던 낮에 비해 뉴욕의 밤거리는 음산했다. 오히려 밤에 빛나는 서울의 거리와는 대조적인 모습이랄까.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졸다보니 도착. 마중 나온 아주머니 차를 타고 한인 마트에 갔다. 한국이 따로 없는 한인 마트. 맛있고 다양한 과일들과 야채들이 넘쳐났고, 고기들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저렴했다. 한국에서 한근에 6만원하는 토시살(소고기)이 이곳에서는 4천원에 불과하다. 말이 되는가. 놀라운 세상은 마트에 가면 모든 경험할 수 있다. in my case.

I came home

일주일이 지나니 이곳이 집처럼 느껴진다. 추운 뉴욕을 너무 열심히 돌아다녔나보다. 이루 말할 수 없는 피로가 몰려왔고, 이도 닦지 않은 채, 세수도 하지 않은 채 나는 잠에 들고 말았다. 천하장사와 하루종일 씨름을 한 느낌이었다.

NY is 천하장사 to me

by 복태

Posted by 그리너